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그건 사실 무엇보다 멍청하지
하루살이 같이 아름답길
뛰어들려고 저 불구덩이를
태우고 또 태워서 날아가길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언제나 외롭다. 2024년 추석 연휴는 5일이나 되었지만, 추석 전날 밤에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큰아버지는 아버지를 나무라셨다.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내 혼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라고 말이다. TK 어르신들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분들의 관점에서는 내가 빨리 짝을 찾고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일 것이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모든 어른들은 내게 기대하고 있다—누군가를 데리고 오기를, 그리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를.
문제는 그 말을 나는 흘려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귀담아 듣고 생각에 빠졌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라니, 다시 사랑에 빠지라니, 감옥에서 막 출소한 사람한테 다시 범죄를 저지르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이제 아이디어가 없다.
이해란 애초에 쉬운 일이 아니다. 2023년만 해도 친구들에게 나는 로맨스 영화 주인공이었다. 사랑을 위해 8000km를 날아가는 남자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말한다. 그것은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마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서둘러 승부를 내려다 홈런을 맞은 투수에게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고 지적하는 해설 위원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돌아보면 그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사랑에 빠졌을 땐 무엇이 성급한 것이고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땐 분명 내 인생의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와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다. 다만 그때보다 더 철저하게 이주할 준비를 할 수는 있었겠다. 하지만 "이건 너무 빨라. 우리 관계의 속도를 조절하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끝이 좋지 않았다고 해도, ex의 삶에 신의 축복이 있길 바란다.
사랑을 찾고자 나는 편견 없이 사람을 보려고, 그 사람의 마음을 보려고 내 오감을 열어두었다. 그 태도로 결국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코펜하겐으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끊었다. 당시 연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친구보다 더 가까웠던 동료들과 작별 파티를 했다. 아끼던 물건을 팔고, 그릇은 버리고, 가구는 친구에게 주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날아간 곳, 내 연인이 있는 곳이 내 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things didn't work out. (디테일을 생략하기에 이만큼 편리한 표현이 없다.) 스웨덴의 유일한 지인과 남이 된 다음 날, 집이 비어있는 시간에 들어가 짐을 챙겼다——가져왔던 짐 세 개와 그곳에서 산 모니터를. 불과 얼마 전의 결심이 무색해졌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말뫼 시내의 공동묘지를 걸었다. 묘비들 사이를 걷고 있자니, 이제는 나 자신에게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된 김에 튀르키예로 떠났다. 이스탄불에 머물렀고, 이즈미르에 머물렀다. 한국으로 돌아와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 애썼지만, 한동안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지만 시장은 냉혹했다. 사랑 타령에서 이제는 생계가 문제가 되었다.
어찌어찌 첫 출근을 하고 돌아온 저녁이 기억난다. 처음 적응에 에너지를 쏟았던 날, 샤워를 하고 탁 풀려 앉았던 그 순간이 생생하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일단락 되자 미뤄두었던 과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외롭고 공허했다. 앞으로 내 삶에 사랑은 없을 것이고, 퇴근 후 이런 저녁이 계속될 거란 생각에 말이다. 그래서 얼마 안 가 퇴근 후에도 다른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냥 앉아서 편히 쉰 저녁은 없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를 만나라니, 사랑을 하라니! 그건 아득한 꿈이다. 당장 그럴 엄두를 내기엔 23-24 시즌은 내게 꽤나 가혹했고, 지금 내 삶은 너무 치열하다.
위 글은 2024년 9월에 쓴 글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굳이 왜 공개하는 걸까. 나를 드러내기로 한 이상, 내 상처와 주요 전환점은 당연히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 사건은 내 삶의 주요 전환점 중 하나였다.
이 글을 쓸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1년 반이 있다. 그 사건 전의 나는 회사 밖에서 딱히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즈미르와 이스탄불에 머물면서, 백엔드 개발자였던 내가 프론트엔드도 거의 모르는 채로 리액트 강의를 들었다. 아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퇴근 후에 계속 코드를 치고, 외주를 잡고, 책을 보고, 뭐든 만들었다. 그냥 멈추면 생각이 나니까. 그런데 그 시간들이 쌓여서 습관이 되었고, 습관이 능력이 되었고, 그 능력이 내가 꿈꾸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바이브가 바뀌어서였을까? 좋은 인연이 찾아왔고, 서로 알아봤고, 깊은 사랑을 하고 있다. I'm blessed. 나는 지금 완전히 (좋은 쪽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