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telling, Storyselling,
최근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 도로에 버려진 유기견 영상이었다. 촬영자가 데려가서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이야기. 분노했다가 눈물까지 날 뻔했다. 좋아요를 눌렀다가, 댓글을 보고 취소했다. 진짜다 가짜다 싸우는 전쟁터였다. 이게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큰 좌절감을 느꼈다. 아마 요즘은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날 밤 잠을 못 잤다. 마침 그날, 한 웹개발자 게시판에서 AI 관련 글을 아예 금지하자는 글을 보았다. 거기 달린 관리자의 댓글이 그 투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커뮤니티 차원의 투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병철의 책 두 권 — '아름다움의 구원', '서사의 위기' — 을 주문했다.
이야기
"우리 팀은 3만 명이 쓰는 앱에서, 검색이 느려지는 문제를 겪었고, 캐시를 붙여봤는데 실패하고, 결국 DB를 바꿨다." — 이런 류의 글. 시간-변형-고통이 다 있다.1 그래서 사람들의 자기 성찰적 블로그나 포스트를 좋아했다. 매끈한 것은 상처를 남기지 못한다. 상처가 없으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2
영화를 좋아하는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좋은 영화는 어떤 거라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나를 완전히 흔들어놓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흔들리면 중대한 결정을 하든, 인생이 어딘가로 크게 전환된다. (나는 히어로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배트맨만 좋아한다.) 비단 영화가 아니더라도 — 누군가의 서사가, 진정성 담긴 글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기도 한다.
에릭 호퍼는 어떤 문제에 막혔을 때, 자기 손이 저절로 책으로 뻗는 걸 보았다. 힘든 생각을 회피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는 그 책을 바람 속으로 던져 버렸다. "그런 경우 나는 진정한 사상가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식물학과 무관한 어떤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 문제를 풀 수 없을 것 같은 장벽에 부딪혔다. 내가 그 문제를 푸는 데에는 엄청나게 힘든 사고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때 내 손이 저절로 배낭 속의 뮤헤의 신탁으로 뻗치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나는 답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다면 그 같은 나의 행동이 힘든 생각을 회피하려는 수작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런 경우 나는 진정한 사상가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 싫은 불쾌한 발견이었다. 나는 그 책을 바람 속으로 던져 버렸다.
Storyselling
All you can really do is use the tour to fill up with experiences and thoughts, and then when you get back to the studio, that's when you release everything that you've encountered.
그런데 이야기가 필요한 곳에서조차,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레딧에는 가짜 질문인 척 카르마를 파밍하는 글이 넘쳐난다. 레딧은 각 게시판별로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얼마 안 남은 청정구역이라고 생각한다. (모더레이터가 강력한 커뮤니티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을 살 만한 스토리가 경제적 보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나도 레딧 덕분에 글로벌 유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가짜 이야기는 절대 쓸 수 없다. 정말 역겨운 짓이다. 누군가가 일궈놓은 커뮤니티로부터 수혜를 받는다면 그건 내 진짜 이야기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레드는 겪어보니 더 심각하다. 정보에 대해 얕은 커뮤니케이션만 알고리즘적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 정확한 로직은 블랙박스에 가깝다. 역주행이라는 개념이 없다 보니, 로또 긁듯 다작을 하는 사람들과, 심지어 내용도 별로 안 바꾼 글들도 꽤 많다. 그러다 보니 깊은 이야기는 저 멀리에 있다. '이야기'를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Meta의 Adam Mosseri는 2024년 10월에 engagement bait 문제를 인정하고 대응 중이라 했는데, 지금이 2026년 3월이다.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 하나도 안 궁금해 보인다.3
회사가 해체되고 모두가 실직자이자 생산자가 되는 시대에, 마케팅은 절박해졌다. 그 기본이 스토리텔링 아닌가. 그러나 자격증 없는 팔이들의 등장에, 스토리텔링은 최소한의 격조를 잃었다. 시간도 변형도 고통도 없는데 서사의 형식만 빌렸다. 한병철의 표현으로 "서사의 옷을 입은 정보", storyselling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온갖 허점 — 여친 말로는 트집 — 을 다 잡아내는 나에게, 정교함 따윈 갖춰볼 생각도 안 한 얕은 수작들은 내 화만 돋운다.)
AI가 이걸 가속시켰다. 1.5년 만에 사진 147.5년 분량의 이미지를 생성했다.4 Spotify에서 AI 음악은 업로드의 28%를 차지하지만 스트리밍의 0.5%만을 차지한다.5 7,500만 개의 스팸 트랙이 삭제됐다.6 만드는 건 공짜가 되었지만 읽히는 건 더 비싸졌다.
그러면 사람이 쓴 글은 무사한가? 나는 그것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 본다. 언젠가 레딧에서 익명으로 살아가던 이들이 커밍아웃을 강제당하고, 어느 한 계정으로는 안 되고 상호 참조가 되지 않으면 독자들도 믿지 않을 것이다.
Soulselling
ChatGPT has no inner being, it has been nowhere, it has endured nothing, it has not had the audacity to reach beyond its limitations.
닉 케이브 — 영화 어바웃타임 OST로 유명한 'Into My Arms'를 부른 사람이다 — 는 AI에 내면이 없고, 어디에도 가본 적 없고, 아무것도 견뎌본 적 없으며, 자기 한계를 넘으려는 무모함도 없다고 말한다. 겪은 게 없으니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넘어, 이야기를 도둑질하는 단계에 왔다. Soulselling. AI가 쓴 글을 자기 생각인 양 내놓는 것. 남의 생각을 출처 없이 가져오는 것. 주작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됐다. 에릭 호퍼(1902–1983)는 수십 년간 부두 노동자로 살았다. 비수기에는 오렌지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잘 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한 부인은 내게 직접 오렌지를 재배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상상 속의 농장과 가족 이야기를 떠벌렸다. 오후 들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렌지는 동이 났다.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서 돈을 셀 때 나는 깊은 회의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느껴 본 적이 없던 수치심이었다. 내가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물건을 팔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경우에 장사는 타락의 근원임이 분명했다. 장사를 위해서는 거리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터였다.
호퍼는 그걸 부끄러워했다. 책이 유명해진 뒤에도 부두에서 짐을 나르며 살았다. 요즘 세태를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장사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을 디스하는 게 아니다. 호퍼가 부끄러워한 건 장사 자체가 아니라, 팔기 위해 겪지 않은 이야기를 지어낸 자기 자신이다.)
오물 자체보다 무서운 건, 오물이 아닌 것까지 오물로 의심받는다는 것이다. 진정성의 기본값이 "일단 믿는다"에서 "일단 의심한다"로 바뀌었다.
AI의 진짜 문제는 오물 자체가 아니라, 모든 사회적 신뢰의 파괴다. 우리는 인지 영역에서 무제한 핵전쟁에 준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그 게시판의 관리자가 삭제하는 것의 60%가 AI 오물이다. 관리자는 이 시대의 네덜란드 소년이다. 그 노동은 대부분 무급이다. (오히려 이야기다운 이야기는 이쪽이다.)
AI 서식 흔적도 제거하지 않은 무성의한 글들이 내 시간을 1초라도 뺏는 것에 지쳤다. 적어도 사람들이 원하는 게 이야기까진 아니어도, 쓰레기가 싫은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도구에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와 인간을 무력화하는 도구가 있다.7 AI로 맞춤법을 고치는 것과 AI로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종류의 도구 사용이다. (제발 부탁인데 AI한테 유머까지 써달라 하지 말자..)
"나는 오늘부터 카톡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와 같은 글을 더 보고 싶은데, 이제 그마저도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영혼팔이라도 하지 않기로, 최소한 인간이기로 다짐해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나는 내가 사람임을(=AI가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글을 올리려 할 때마다 카메라 앞에서 눈을 깜빡이고, 입을 벌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