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문서는 없는 문서보다 위험하다
The idea that information can be stored in a changing world without an overwhelming depreciation of its value is false. It is scarcely less false than the more plausible claim that after a war we may take our existing weapons, fill their barrels with information.
나는 문서를 온전히 신뢰해본 적이 거의 없다.
문서가 없어서가 아니다. Notion 위키, Confluence 스펙, Google Drive 기획서. 양은 충분했다. 문제는 몇 달 지나면 열 개 중 하나둘이 현실과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 그게 함정이다. 열 개 중 아홉은 아직 맞으니까, 나머지 하나도 맞겠거니 한다. 그게 회의실 예약 정책이면 웃고 넘어간다. 수수료율이면 안 웃긴다 (0 하나 빠졌다고 생각해보자).
개발자로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었던 건 코드였다. 코드는 거짓말을 못 한다. 틀리면 그냥 깨진다. 문서는 낡아도 그럴듯하게 남아 있다. 개발자가 한때 귀한 대접을 받았던 건, 진실을 가까이서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문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현재를 반영하는 문서다. Single Source of Truth(SSOT), "이게 지금 기준"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유일한 곳. 다른 하나는 스냅샷이다. 쓰인 시점에는 맞지만, 그 이후는 보장 못 한다.
연차 관리를 생각해보자. 잔여 연차가 HR 시스템에 있으면 그게 SSOT다. 그런데 팀장이 스프레드시트로도 따로 관리하면? 둘이 어긋나는 순간, 둘 다 못 믿게 된다.
대부분의 기획서, 설계 문서, 회의록은 SSOT가 아니라 스냅샷이다. 작성일 기준으로는 맞았다. 일주일 뒤? 모른다. 그리고 낡은 문서는 없는 문서보다 위험하다. 없으면 사람들이 직접 확인한다. 있으면 그냥 믿는다.
AI 시대에 이 스냅샷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AI 세션 몇 번이면 그럴듯한 기획서, 리서치 리포트, 실행 계획이 나온다. 다음 세션에서 다 엎어진다. 문서 생산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니까 스냅샷은 쌓이는데, 정리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누군가 AI한테 "이거 좀 정리해줘"라고 할 거다. 그럼 또 하나의 스냅샷이 나올 뿐이다.
문서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살아 있어야 할 문서가 뭔지 구분하지 않고 쌓이는 게 문제다. SSOT는 생각보다 적다. 나머지는 스냅샷이라고 인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