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문서는 없는 문서보다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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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dea that information can be stored in a changing world without an overwhelming depreciation of its value is false. It is scarcely less false than the more plausible claim that after a war we may take our existing weapons, fill their barrels with information.Norbert Wiener ·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나는 문서를 온전히 신뢰해본 적이 거의 없다.

문서가 없어서가 아니다. Notion 위키, Confluence 스펙, Google Drive 기획서 — 양은 충분했다. 문제는 몇 달 지나면 열 개 중 하나둘이 슬금슬금 현실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게 함정이다 — 열 개 중 아홉은 아직 맞으니까, 나머지 하나도 맞겠거니 한다. 그게 회의실 예약 정책이면 웃고 넘어간다. 수수료율이면 안 웃긴다 (0 하나 빠졌다고 생각해보자).

개발자로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었던 건 코드였다. 코드는 거짓말을 못 한다 — 틀리면 그냥 깨진다. 문서는 낡아도 그럴듯하게 남아 있다. 개발자가 한때 귀한 대접을 받았던 건, 진실을 가까이서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문서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현재를 반영하는 문서 — Single Source of Truth(SSOT), "이게 지금 기준"이라고 가리킬 수 있는 유일한 곳. 다른 하나는 스냅샷이다. 쓰인 시점에는 맞지만, 그 이후는 보장 못 한다.

연차 관리를 생각해보자. 잔여 연차가 HR 시스템에 있으면 그게 SSOT다. 그런데 팀장이 스프레드시트로도 따로 관리하면? 둘이 어긋나는 순간, 둘 다 못 믿게 된다.

대부분의 기획서, 설계 문서, 회의록은 SSOT가 아니라 스냅샷이다. 작성일 기준으로는 맞았다. 일주일 뒤? 모른다. 그리고 낡은 문서는 없는 문서보다 위험하다 — 없으면 사람들이 직접 확인한다. 있으면 그냥 믿는다.

AI 시대에 이 스냅샷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AI 세션 몇 번이면 그럴듯한 기획서, 리서치 리포트, 실행 계획이 나온다. 다음 세션에서 다 엎어진다. 문서 생산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니까 스냅샷은 쌓이는데, 정리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누군가 AI한테 "이거 좀 정리해줘"라고 할 거다. 그럼 또 하나의 스냅샷이 나올 뿐이다.

문서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살아 있어야 할 문서가 뭔지 구분하지 않고 쌓이는 게 문제다. SSOT는 생각보다 적다. 나머지는 스냅샷이라고 인정하면 된다.